손해보험사들이 예정이율 인하를 검토하면서 절판마케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책임 경영 강화를 위해 도입한 '책무구조도'가 현장 관행을 바꾸는 데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이 다음달 예정이율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예정이율이 0.25%포인트 내려가면 보험료가 상품별로 최대 15%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본다.
'저금리' 보험사 운용 기대수익 하락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올릴 수 있다고 가정하는 수익률이다. 예정이율은 보험료와 반비례 관계로, 예정이율이 높을수록 보험료는 낮아지고 낮을수록 보험료는 높아진다.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운용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보험사는 같은 보장이더라도 고객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받아 손실을 보전한다. 예정이율 인하가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손보사들이 예정이율 인하에 나선 배경은 시장 금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인하했다. 그 결과 현재 기준금리는 3.5%에서 2.5%로 낮아졌다.
여기에 오는 8, 10월에 열리는 금통위에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보험사들의 운용 수익률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정이율이 인하되면 보험료가 상승하는만큼, 일부 영업 현장에서 절판마케팅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절판마케팅이란 특정 보험상품이 조만간 판매 중단되거나 조건이 불리해질 것처럼 홍보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이 상품 곧 없어져요", "내일부터는 이 조건이 안 돼요" 등 표현을 사용해 지금 가입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난달 금감원은 절판·허위 마케팅이 성행하는 것을 우려해 마케팅법인보험대리점(GA)협회를 통해 허위 마케팅 주의 촉구 공문을 내리기도 했다.
책무구조도, 판매윤리 회복 계기되나
다만 금융당국은 최근 시범운영을 시작한 책무구조도 제도가 정착되면 이 같은 판매 관행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것은 내부통제는 물론 상품 설계부터 관리 감독까지 소홀히 하지 말라는 취지"라며 "임원의 책임이 강화되는 만큼 책무구조도가 정착하면 절판마케팅도 근절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각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구분한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책무구조도에 명시된 임원은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지배구조법 시행령 별표1에 따르면 금융영업 관련 책무에는 △보험상품 개발업무 △보험계리업무 △보험모집 및 보험계약 체결 업무 △보험계약 인수 △보험계약 관리 △보험금 지급업무 등이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도입을 계기로 보험사의 상품과 마케팅 전략이 '이익 중심' 의사결정보다 '위험 책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순히 임원의 책임을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라 회사 전체의 판매윤리와 소비자 보호 역량을 재정비하는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