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기업가치제고(밸류업) 활동에 따른 불똥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자회사로 편입한 삼성화재를 관계기업으로 분류해 지분법에 반영할지 여부, 삼성전자 주식 매각이 '회계 일탈' 위반인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
이를 두고 회계적으로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워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삼성생명은 보험업법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분리법)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회계 정책도 금융당국의 방향에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 논란은 과거 삼성생명의 유배당 계약 보험료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지분을 매입한데서 출발했다. 이재용 그룹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리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 와중에 회계기준원도 회계 일탈의 원상 복귀, 자회사로 편입된 관계사의 지분법 적용 여부 등을 중심으로 생명보험회계의 일부 쟁점들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 '발단'
삼성생명은 올초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425만2305주(약 2337억원)를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처분 사유로는 금산분리법 위반 리스크를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밸류업이 단초가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열고 주주환원을 위해 향후 1년 동안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의결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밸류업을 강조했고,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삼성전자의 주가가 지지부진하자 주가 부양을 위한 조치였다. ▷관련기사: 삼성전자 3.9조 자사주 추가 취득…10조 매입 마무리(7월8일)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율에도 변동이 생기게 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삼성전자 지분 8.51%와 1.49%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면 발행주식수가 감소해 양사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상승하게 된다. 금산분리법에선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삼성생명(삼성화재도 삼성전자 지분 74만3104주를 매도함)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한 이유다.
그런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삼성생명은 과거 유배당 보험(보험료 일부를 투자해 초과 수익을 계약자에 배당) 계약자 보험료로 취득한 관계사(삼성전자·삼성화재 등)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해당 자산의 평가이익 중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자지분조정'이란 명목으로 '원가' 기준으로 부채에 반영해왔다.
2023년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변화가 불가피했다. 다른 산업에선 매도가능증권 등 평가손익은 기타포괄손익(자본)으로 표시하고 있어 계약자지분조정(부채)으로 표시하는 보험업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IFRS17는 보험부채를 보험계약에 따른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가정과 위험을 반영한 할인율을 사용해 측정하는데, 평가손익만 따지는 계약자지분조정은 부채 항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만 삼성생명은 금융감독원과 협의를 거쳐 '회계 일탈'(특수 상황에 예외 사항을 인정)을 선언해 기존 원가기준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는 가정이 전제조건이었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바뀌는 보험 장부…삼성생명에 쏠린 눈('23년 1월9일)
삼성생명은 금산분리법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회계 일탈의 전제조건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계 처리에 대해 이용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회계 일탈 규정을 안내한 것이고 판단은 회사의 몫"이라며 "최근 상황에 대해선 판단하기 어렵고 회계기준원 등의 논의 내용을 봐야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자회사 삼성화재, 지분법 적용 대상일까
삼성화재의 자회사 편입도 출발점은 같다. 삼성화재는 올초 밸류업 방안으로 2028년까지 자사주 비중을 5% 미만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4년간 균등소각을 가정하면 삼성화재는 매년 발행주식 총수의 2.5~3% 가량을 소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상승하게 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보험업법이다. 보험업법에선 보험사가 타 회사 발생주식 15% 이상을 소유하게 되면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삼성화재의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15%를 넘어서게 되자 삼성생명은 금융위원회에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승인을 신청했다. 삼성화재는 삼성생명의 자회사가 됐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의 자회사 편입에도 경영상 변하는 것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보유 지분 만큼 지분법을 적용한 회계처리를 하려면 지분 2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지분 20% 이상을 보유해야 해당 기업에 대한 주요 영업과 재무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보유지분이 20% 미만이어도 이사선임권 등 경영진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재무와 경영 정책 등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면 관계기업으로 분류해 지분법 회계를 적용할 수 있다. ▷관련기사: '보험사 1호' 삼성화재 밸류업, 삼성생명에 달렸다?…이유는(2월4일), 삼성화재 품는 삼성생명, '자회사 편입' 선택 배경은(2월14일)
여기서 논란이 발생한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가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지분율이 20%에 미치지 못하고, 회사 경영에도 영향력이 없어 관계기업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자회사로 편입된 삼성화재를 관계기업으로 보고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 삼성화재의 순이익이 지분율 만큼 삼성생명 연결재무제표에 반영돼 삼성생명 배당 여력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일각에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도 유배당 계약 보험료로 매입한 것이어서 지분법에 따라 반영된 순이익은 유배당 보험 계약자 배당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회계분야 관계자는 "보험업법에서 지분율 15%를 넘으면 자회사로 편입토록 한 이유가 있을텐데 취지를 보면 회계상 지분법으로 인식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반면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해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면 그런 관계는 아니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삼성화재에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지분율이 15%가 안됐어도(자회사 편입 전이어도) 관계기업으로 보고 지분법 적용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자회사 편입 전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