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김희정 기자] 일본 도쿄 미나토구 시바(芝). 도쿄타워와 그리 멀지않은 이곳은 전통 있는 일본 기업과 외국계 법인이 공존하는 오피스 밀집지다. 한국으로 치면 비즈니스 중심지인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 테헤란로에 해당한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미타 벨쥬 빌딩(MITA BELLJU BLDG.)이라는 모던한 건물이 눈에 띈다. 신한은행 일본 현지법인인 SBJ은행 본점이 이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SBJ은행은 이 건물에서만 최소 4개 층을 사용 중이다. 4층에는 본점 영업부와 본부 접수처가, 5층에는 주력 대출상품인 애니(ANY) 주택론 센터가 위치한다. 7층에는 추가 사무공간과 디지털 자회사 SBJ DNX가 입주해 있고, SBJ DNX는 16층에도 별도 공간을 두고 있다. SBJ DNX는 디지털 신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2020년 SBJ은행이 설립한 IT 전문 자회사다. 이렇다할 간판 하나 보이지 않지만, 이 곳은 10개도 채 되지 않는 지점만으로 현지 은행 중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자랑하는 SBJ은행의 핵심 거점이다. 

SBJ은행 본점 영업점/사진=김희정 기자 @khj

10개 안되는 지점서 지난해 1460억 순익

SBJ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56억8000만엔(약 1465억6000만원)으로 6년 만에 약 2.5배 성장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작년 신한은행 해외법인 가운데서도 손익 비중 20%로 신한베트남은행(36%)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할 만큼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계 은행의 무덤'이라는 일본 금융시장에서 보기 드문 성과를 내고 있는 SBJ은행에 국내 금융권 관심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SBJ은행의 성공비결은 한 마디로 적게 쓰고도 크게 버는 효율성이다. 한국식 영업 방식, 민첩한 의사결정, 그리고 디지털 혁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예외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본점에서 만난 SBJ은행 관계자는 "실제 전체 고객의 약 90%가 일본 국적 고객일 만큼 현지 고객 중심의 영업 구조가 뿌리내렸다"고 말했다. 

SBJ은행은 신한은행의 RM(Relationship Manager) 중심 기업금융 모델을 일본 현지에 이식하며 운영 효율과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영업점별 전담 RM을 통해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거래 유도 및 확장 영업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일본 금융시장의 보수적인 특성과 달리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동적인 접근을 선택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문제 해결 중심의 대응으로 현지 고객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현장에 권한을 부여하는 즉각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 주효했다.

디지털 기술을 극대화한 시스템 운영도 SBJ은행 강점 중 하나다. 지점 수가 10개도 되지 않는(9개) SBJ은행은 자체 개발한 아이텔(AiTHER)시스템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최소화했다. 2024년에는 ANY 주택론의 100% 비대면화에 성공하며 일본 내 최초로 방문 없는 주택담보대출 프로세스를 선보였다. 

SBJ은행 본점은 도쿄 미나토구 시바에 위치한 미타 벨쥬 빌딩(MITA BELLJU BLDG.)에 자리하고 있다./사진= 김희정 기자 @khj

'한국계 유일' 일본 은행의 의미

SBJ은행이 내고 있는 이례적 성과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뒷받침됐다. SBJ은행의 뿌리는 1986년 신한은행이 오사카 지점을 열면서 시작된다. 이후 1988년 도쿄 지점, 1997년 후쿠오카 지점을 차례로 개설했고 2009년에는 일본 금융당국으로부터 현지 은행 면허를 취득하며 SBJ은행이라는 이름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 일본 내에서 유일한 한국계 은행 현지 법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현지법인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단순한 해외지점과 달리 현지 법인은 일본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지닌다. 영업 자율성이 크고 일본 고객의 신뢰 확보에도 유리하다. 진입 장벽이 높은 일본 금융 시장에서 한국계 은행이 단독 법인을 운영하는 건 SBJ은행이 유일하다. SBJ 설립 전까지 현지 법인 승인을 받은 외국계 은행은 미국 씨티은행뿐이었다. 수십 개 글로벌 은행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2년 말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하자 SBJ은행은 2013년 수익형 부동산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론을 출시했다. 아베노믹스 양적완화 정책이 주택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2013년 211억엔이던 주택론 취급고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주도 하에 2015년 1080억엔으로 5배 이상 불어났고, 그 결과 SBJ은행의 고속 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다. SBJ은행이 현지법인이라는 점에서 지점과 다른 독립적인 사업체로서의 성장과 성공을 의미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SBJ은행은 진 회장이 2023년 3월 취임 후 첫 해외 기업설명회(IR)로 찾은 곳이기도 하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 설립 초기 주주로서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주주들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신한은행 블루캠퍼스에서 ‘2025년 하반기 경영포럼’을 개최했다. (사진 가운데)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AI 실습 미션 수행 중인 경영진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신한금융

진 회장은 지난 1986년 신한은행에 합류해 1997년 일본 오사카 지점에서 해외경험을 시작했다. 이후 2008년 신한은행 오사카지점장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2009년 SBJ은행 오사카지점장을 맡았다. 2011년 SBJ은행 관계사인 일본 SH캐피탈 사장, 2014년 SBJ은행 법인장을 거쳐 불과 1년 만에 사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진 회장은 신한금융그룹 내에서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과 임영진 전 신한카드 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통' 계보를 잇는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