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권에서도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이 본격화됐다. 금융당국이 회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 체제에 따른 이해상충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보험업계 전반에서 이사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9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각 임원별로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구분한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 책무구조도에 명시된 임원은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 부여된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시범운영 전 53개 금융투자회사와 보험사를 대상으로 사전 컨설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의 약 47.1%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으로 인해 이해상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이 지배구조법에 따라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원활히 작동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책무구조도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된다. 대표이사는 내부통제를 포함한 경영 전반의 집행과 운영 책임을 지고 관련 관리조치의 내용과 결과 등을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의 운영 및 감독을 책임지며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이행 여부를 이사회 산하 내부통제위원회를 통해 점검·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도 이사회 운영방식 개편에 나섰다. KB손해보험은 지배구조 내부규정을 개정해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하도록 규정했다. 기존 정관에서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해 구본욱 사장이 의장직을 수행왔으나, 이번 정관 개정에 따라 조재호 사외이사가 신임 의장으로 선임됐다.
KB라이프생명도 정관을 개정해 정문철 대표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직을 김영선 사외이사에게 맡겼다. 메리츠화재 역시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분리, 김중현 대표 대신 성현모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반면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은 아직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다. 교보생명의 경우 오너일가인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함께 맡고 있다. 다만 교보생명은 관리 감독의 실효성 측면에서 위배되는 사안은 없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권한이 겹치게 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교보생명은 현재 신창재 대표와 조대규 대표 각자 대표 체제인 데다, 책무구조상 대표이사로서의 권한과 책임은 조 대표 쪽으로 부여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은 여승주 부회장이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겸하고 있었으나, 여 부회장이 한화그룹 경영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권혁웅 전 한화오션 부회장과 이경근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사장이 각자 대표로 내정된 상태다. 두 대표 모두 아직 내정자 신분이고 임시 주주총회는 다음달 5일로 예정돼 있어 대표이사외 이사회 의장 분리 여부는 추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는 장기적으로 이사회 독립성과 내부통제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운영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향후 책무구조도 이행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 안착을 관리할 예정이어서 겸직 구조를 유지 중인 보험사들도 단계적으로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감독하는 자와 감독받는 자가 동일하면 감독 기능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될 여지가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모든 보험사가 대표이사회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사회와 경영진 간 실질적 견제와 균형을 정착시키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