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한 보험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냐고요.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저출산·고령화로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보험사들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며 보험수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주된 배경은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입니다. 영업환경은 도입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지만 회계제도 정책 변화로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요.

특히 보험사들이 수익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위험 요인도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규제 신설을 시사하면서 부담도 커지고 있는데요. 보험업계의 고충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CSM의 두 얼굴

새 회계제도에서 보험계약 수익성은 CSM(보험계약서비스마진)으로 산출됩니다. 보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선 CSM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CSM은 보험사가 소비자와 맺은 계약을 통해 받은 보험료 중 향후 이익으로 인식할 추정 금액인데요. 보험부채로 계상한 뒤 보험기간에 걸쳐 일정 비율로 상각하면서 보험영업이익으로 인식하는 구조입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CSM이 높은 상품을 팔아야 할텐데요. 장기·보장성보험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건강보험의 CSM이 높은데요. 건강보험은 사업비차익과 특약 등에서 이익이 주로 발생합니다. 이 영향으로 건강보험 판매를 위한 보험업계 경쟁이 치열한 상황입니다. 

CSM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보장성보험을 팔면 동시에 보험사들의 보험부채도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는데요. 

국내 보험사들은 부채 듀레이션(금리 변동에 따른 자산·부채 가치가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민감도 지표)이 자산 듀레이션보다 깁니다.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자산과 부채가치가 변하게 되는데, 금리 하락에 따른 자산 증가 폭보다 부채 증가 폭이 더 커지는 구조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산·부채 관리(ALM)가 중요한데요.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갭(격차)을 줄이는 게 보험사들의 주요 경영 현안 중 하나입니다.   

자산과 부채 듀레이션 갭을 줄이는 방안으로 우선 장기 보유하는 자산을 늘리는 방안이 있습니다. 장기채를 매입하거나 파생상품 이용, 선물거래 등을 통해 자산 듀레이션을 늘릴 수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비용이 들죠.

부채 듀레이션을 축소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보험사들이 높은 CSM을 확보하려면 장기·보장성보험을 팔아야 하는데, 이런 상품들은 장기간 계약이 이뤄진 만큼 보험부채 듀레이션이 깁니다. 결국 장기·보장성보험을 팔아 CSM을 확보할수록 부채 듀레이션도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이에 전문가들은 CSM이 다소 줄더라도 만기가 짧은 상품 등의 판매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하는데요.

한 보험 회계 관계자는 "현재는 보험사들이 주력하는 상품들의 주계약 만기가 긴데 갱신형 상품이나 단기 보장성 상품 등 만기가 짧은 상품을 판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금융당국 규제 탄력성 필요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선 새 회계제도를 도입한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로 고민거리입니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권고기준(130%)을 맞추는데 보험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데요.

보험업계에선 실제 벌어들이는 돈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새 회계제도로 킥스 비율이 떨어지는 등 지표가 악화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비용(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 등)이 늘어난다는 점을 토로합니다.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인데요.

금융당국도 이를 감안해 새 회계제도 도입과 함께 적용하려던 규제 등에 대한 속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를 위한 최종관찰만기(LOT) 30년 도입 시점을 재조정하는 게 대표적인데요. ▷관련기사: 보험사 부채평가 할인율 규제는 속도조절…ALM 규제는 도입 검토(7월2일)

시장에서도 올 1분기 보험사 자본이 급감한 가장 큰 원인이던 할인율 현실화 정책 재검토로 인해 관련 부담은 이전보다 크게 완화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규제를 유예하기도 어렵습니다. 새 회계제도 안착을 위해선 보험사들이 이익을 늘리면서도 부채 관리를 하고 결과적으론 안정적으로 킥스 비율을 유지토록 해야하는 까닭입니다.

이에 자산·부채 듀레이션 갭 범위를 정하고 준수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 등 ALM에 대한 평가항목을 도입·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셈이죠. ▷관련기사: 금융당국의 '당근과 채찍'…보험사 "그런데 채찍이 너무 무서워"(7월3일)

한 보험사 관계자는 "ALM 규제가 도입되면 보험사들은 서둘러 부채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본다"며 "자산운용 전략의 전면적 재편이 불가피하고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듀레이션 관리 역량 격차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결국 CSM 확보와 부채 듀레이션 관리 등 딜레마 같은 상황에 대응하려면 보험사는 새로운 수익원 확보를, 금융당국은 규제의 탄력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설명인데요.

한상용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결국 건전성 관리의 문제로 가용자본을 늘리기 위해선 다양한 유형의 상품을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CSM 확보 이외의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며 "금융당국도 새로운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새 회계제도 도입 과정에서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안착에 성공할 수 있을지, 험난한 과정이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