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보험사들의 성장을 제약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형 보험사와 대형 보험사에 적용되는 자본 규제가 동일하고, 디지털 보험사의 상황과 동떨어진 마케팅 규제 때문에 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 사진=김민지 기자

10년 지나도 점유율 0.2% "노력해도 어렵다"

19일 보험연구원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보험연구원 12층 컨퍼런스룸에서 '디지털 보험시장 세미나'를 열고 디지털 보험시장 동향과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석 교보라이프플래닛 대표는 "디지털 보험사가 잘 돼야 인슈어테크라는 IT 생태계가 생기고, 이 생태계가 마련돼야 설계사 채널만이 회사가 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디지털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환경 조성이 될 것"이라며 "그런 환경이 조성되면 결국 보험료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소비자에게 더 좋은 보장을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보장성 보험에서 사이버마케팅(CM)채널의 점유율은 0.2%에 불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금융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은행신용대출(78%) △증권계좌개설(89%) △신용카드발급(55%) 등에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난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교보라이프플래닛 출범 당시 10년 정도가 지나면 전체 신계약 수입보험료의 11% 정도는 디지털로 전환될 것으로 봤다"며 "그러나 현실은 현재 0.2%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헬스케어 플랫폼 '라플레이'나 업계 최초로 자신의 보험 보장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맞추기도 하고 회사가 계획했던 걸 실행했다"면서도 "자본 규제와 마케팅 규제 등 두 가지 부분에서 (금융당국이) 도움을 준다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대형사와 같은 기준, 마케팅 규제도 '족쇄'

디지털 보험업계는 디지털 보험시장이 좀처럼 성장할 수 없었던 이유로 규제 일변도의 환경을 꼽는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자본 규제가 대형 보험사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을 130%(종전 150%)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보험 계약자 보호 측면에서 킥스 비율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책임질 수 있는 플레이어만 시장에 들어와야 되는 거는 당연하다"면서도 "문제는 현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소비자 보험 계약자 규모가 작아서 영향이 크지 않은 보험사에도 동일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험사의 규모에 맞춰서 규제를 충분히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며 "경영개선권고에 대한 허들을 100% 정도로만 낮춰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마케팅 규제에 대해선 △보험상품을 직접 비교·안내할 수 있는 규제 개선 △보험료·보험금을 포함한 광고에 대한 규제 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에 더해 △바이럴 마케팅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보험에 맞는 보험 정보 공유 관련 규제 마련 △중개인 없이 직접 가입하는 고객에 대한 특별이익한도 완화 등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설계사 수수료를 아껴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이 다양하지만, 특별이익한도가 있어 3만원 이상은 제공할 수 없다"며 "설계사 수수료를 아껴봐야 이를 고객에게 돌려줄 방법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보험 가격을 낮추긴 한다"며 "하지만 고객에게 보험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을 타사와 비교해서 보여줄 수 없으니, 건강 증진 혜택 등을 제공해 고객이 혜택을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혜택 돌려주고 해지율 낮출 수 있어  

디지털 보험업게는 규제 완화로 디지털 보험사가 시장에서 자리잡게 되면 대면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보험 대비 보험료가 10~20%가량 저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소비자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가입하는 보험 문화가 정착돼 해지율을 낮출 수 있어 소비자 권리 보호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전체 보험산업 측면에서는 인슈어테크 산업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고 디지털 보험사가 업계의 '메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김 대표는 "싱가포르의 경우 IT 솔루션 중 특히 보험 솔루션 회사가 굉장히 많다"며 "한국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현재 국내 보험업계는 시스템과 혁신에 투자하는 것보다 차라리 설계사 수당을 더 주는 게 훨씬 나은 상황이 됐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역시 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박소정 서울대학교 교수는 "킥스 규제, 디지털 특성을 반영 하기 쉽지 않은 판매와 관련된 규제들이 디지털 소형 보험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타이트한 자본 규제 같은 것들이 신규 보험사의 진입 장벽 자체를 높여 플레이어 숫자가 계속 줄어들고 보험 산업이 독과점화 되어 가는 것들이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적으로 아직은 유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디지털 기반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임베디드 보험 등 상품에 대한 제약도 유연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성환 신한EZ손해보험 단장은 "디지털 보험사의 유지율, 민원 등 건전성 지표가 크게 나쁘지 않다면 디지털 보험 샌드박스 같은 파일럿 형태로 규제를 완화해 준다면 다양한 채널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