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체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인 개인 채무자들의 빚을 대신 갚기로 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출자한 채무조정 기구, 이른바 배드뱅크가 대상 채권을 일괄매입해 채권을 소각(100% 감면)하거나 조정(80% 감면)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한 재원으로는 약 8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과 함께 금융권 협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대신 채무를 갚는 정책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선 약자에 대한 재기 기회 제공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1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따라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신설·추진된다. 이 대통령은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 등을 위한 배드뱅크 설치를 공약한 바 있다.

중위소득 60% 이하, 처분가능 재산 없으면 캠코가 처리

채무조정 프로그램 지원 대상은 7년 이상 연체,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개인사업자 포함)이다. 연체 7년 이상은 연체정보가 공유되는 최장 기간, 파산·면책 후 재신청이 가능해지는 기간이다. 채무액을 5000만원 이하로 설정한 것은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채무조정 신청자의 평균 채무액(4456만원) 등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채무조정 구조는 캠코가 출자한 채무조정 기구가 대상 채권을 일괄매입해 처리한다. 우선 채무조정 기구와 금융사 간 협약을 체결하고, 협약 금융사는 대상 채권을 채무조정 기구에 일괄 매각한다.

이후 채무조정 기구가 매입한 채권은 즉시 추심을 중단하고 철저한 소득과 재산 심사를 거쳐 소각하거나 채무를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관계부처 행정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소득과 재산을 심사한다는 게 금융당국 구상이다.

지원 대상자가 개인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능력을 상실한 경우에 채권을 소각(빚 탕감)한다. 소득 기준은 중위소득 60% 이하, 재산은 회생·파산 인정 재산 외 처분가능재산이 없는 경우 등이다.

현재 채무에 비해 상환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기존 신복위 채무조정보다 강화된 채무조정이 이뤄진다. 신복위 개인워크아웃 시에는 원금 최대 70% 감면, 분할상환 최장 8년인데 이번 프로그램에선 원금 최대 80% 감면, 분할상환 10년 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보면 소각 대상으로 선정되는 기간이 1년 정도였다"며 "다만 재산이 추후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 소각 대상도 바로 소각 되는 것은 아니고 재심사 등을 거쳐 소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채무조정 외 서민들의 자활과 재기 지원을 위해 채무자 신용 상태 컨설팅, 취업·창업 지원 등 종합재기 지원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마중물 4천억…나머지는 금융권 몫 될듯

금융당국은 총 매입채권 규모는 16조5000억원, 총 수혜 인원은 113만4000여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을 통해 연체기간과 기준금액별 연체 채권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 소요되는 재원은 8000억원 내외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이 가운데 2차 추경으로 4000억원 가량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재원 마련은 금융권과 협의를 통해 이뤄질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4000억원 정도는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금융권이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여 방법은 향후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4000억원을 금융권이 부담한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고 과거 사례를 보면 많은 곳에서 최대한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정부가 직접 개인 채무자들의 빚을 갚아주는 정책인 만큼 일각에선 도덕적 해이,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 정부는 약자의 재기를 위한 기회 제공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성실 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충분히 공감한다"며 "누구나 장기 연체자가 될 수 있고 사회 통합과 약자에 대한 재기 기회 제공 차원에서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프로그램에선 파산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환능력을 상실한 연체자만 엄격히 선별해 지원할 것"이라며 "채무 불이행에 따른 감내하기 어려운 연체의 고통을 감안하면 고의 연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