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등장 가능성이 가시화했지만, 카드업계는 당장의 위협은 크지 않다는 판단 아래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기존 카드 결제는 소비자가 카드사와 은행을 거쳐 가맹점에 돈을 지급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와 소비자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신용평가 등의 부가 수익을 창출해 왔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본격 상용화되면 소비자는 블록체인 지갑을 통해 가맹점에 직접 토큰을 전송할 수 있다. 은행·카드사·PG(전자지급결제대행)·VAN(밴사) 등 중간 단계 없이도 결제가 가능해진다. 이는 수수료 절감은 물론 결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빅테크 수혜 예상…신뢰도 확보가 우선
특히 카카오페이, 토스,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 기업들이 간편결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자체 지갑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연동해 결제를 주도하게 된다면 카드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추진할 경우 예상되는 로드맵은 은행 중심의 발행에서 핀테크·IT 기업 확장 참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민간 발행을 확대해 시장을 확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이 경우 기존의 디지털 페이먼트 시스템을 잘 구축한 기업들이 수혜가 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 기존 페이먼트사들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카드를 비롯한 기존 결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려면 단순한 도입을 넘어 널리 보급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내는 코인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루나-테라' 사태를 겪은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 5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금융 안정적인 측면에서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일단 우리가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면서 감독이 가능한 은행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리닷페이' 도입? 카드업계는 "영향 제한적"
최근에는 홍콩계 핀테크 기업 '리닷페이'가 달러 스테이블코인 체크카드를 국내에 내놓았으나, 아직은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리닷페이 체크카드는 애플페이에 연동해 쓸 수 있는 가상 카드 발급도 가능하고,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인 비자(VISA) 결제망이 구축된 국내·외 모든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결제 시 고객이 보유한 가상자산에서 차감되고 가맹점에는 상품값을 원화로 지급한다.
현재는 국내 실물 카드 실물 발급이 중단된 상태지만, 실물 카드 없이 애플페이에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가상 카드 발급은 가능하다.
카드업계는 스테이블코인 카드 등장이 현재로써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카드는 해외에서 발급된 직불카드라 적격비용 산출제도에 따라 영세 신용카드 가맹점에 적용되는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적격비용이란 신용카드 가맹점이 부담하는 게 합당한 비용을 뜻한다. 자금조달·위험관리·마케팅·일반관리·조정비용 등이 포함된다. 3년마다 재산정되며 여기에 마진율을 더해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한다. 현재 연매출 3억원 이하의 가맹점은 신용카드 0.40%, 체크카드 0.15%의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다.
게다가 리닷페이는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한 선불형 카드지만, 비자카드 결제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기존 카드 인프라에 얹힌 구조다.
보통 국내 발행 카드로 국내 결제할 때는 소비자가 수수료를 내지 않지만, 리닷페이는 해외 카드로 간주해 해외 이용 수수료(보통 1~2%)가 소비자에게 부과될 수 있다.
가맹점도 마찬가지다. 국내 가맹점은 카드사·밴사와 계약해 카드 결제를 받는다. 그런데 리닷페이와 같은 해외 발행 카드로 결제되면 국내 가맹점은 이를 해외 카드 결제로 처리하게 되고 이 경우 기본 카드 수수료보다 더 높은 수수료율(약 2~3%)이 가맹점에 부과된다. 리닷페이와 같은 구조는 스테이블코인을 쓰지만, 결제 비용은 오히려 더 비싸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 중 하나는 중개 수수료를 줄이는 것인데 국제 카드망을 통하면 오히려 수수료가 더 생기거나 높아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카드는 현재 형태로는 큰 위협은 아니다"라며 "지금은 스테이블코인으로 직접 결제되는 것이 아니라, 비자카드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카드 회원에게도 수수료가 부과되고 가맹점은 우대수수료율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어떤 식으로 상용화가 되고 소비자들이 이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