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계부채 대응 방향에 이목이 쏠린다. 가계대출은 사실상 부동산 가격과 직결된 만큼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둘러싼 정책 기조 변화가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안정적 관리'를 언급하며 신중한 접근을 예고했지만 구체적 정책 방향은 아직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미 기준금리 인하와 경기부양 기대감에 대출 증가세가 지속되는 상황이어서 대출 억제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서민 보호와 자영업자 부담 완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서울 국회 로텐더홀에서 이재명 제21대 대통령 취임식이 개최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경기 살려야 하는데…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1.5→0.8%) 등 국내외 주요기관은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이란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민간소비와 건설·제조업의 동반 부진에 더해 미국 관세 부과로 수출과 투자가 위축되면서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취임 첫해 0%대 성장률로 출발하는 정부는 1998년 외환위기(IMF) 때인 김대중 정부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경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쓸 수 있는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전망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 "당선 즉시 대통령이 지휘하는 '비상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최소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하겠다"고 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이날 '1호 행정명령'으로 TF 구성을 지시했다. 

당장 금융권의 관심은 새 정부의 가계부채 연착륙 전략에 쏠린다.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새 정부의 경기부양 기대감까지 겹치면서 가계부채가 다시 불안정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이 대통령은 그간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 기조를 확립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왔다. 다만 부동산 가격과 금융시스템 안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관계기관 회의를 정례화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한 바 있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약 6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월에 4조2000억원 증가한 데 이어, 3월에는 증가폭이 4000억원으로 크게 줄며 잠시 주춤했지만 4월 들어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등의 영향으로 5조3000억원까지 다시 급증했다. 5월에도 증가세가 이어지며 가계대출이 다시 빠르게 불어나는 모습이다.

가계대출, 부동산과 직결…수요 억제 기조 유지될 듯

가계부채 문제가 부동산과 맞물려 있는 만큼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대출 억제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우형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 편성 등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설 수는 있겠지만 그 방식이 가계대출 확대 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가계대출은 부동산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정부가 여전히 수요 억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강화하며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오는 7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될 경우 전 금융권 주담대와 신용대출, 기타대출(카드론·비주택 담보대출 등)에 스트레스 금리 1.5%가 적용된다.▷관련기사 : 7월부터 연봉 1억도 주담대 '혼합형' 받으면 한도 3300만원 '뚝'(5월20일)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둔화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여지는 있지만 DSR 규제까지 완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는 '빚내서 경기 부양하자'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실거주 실수요자에게 주거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대출은 지역·보유자에 따라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 고가 주택이나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는 유지하되 지방 활성화를 위해 일부 완화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가계·기업부채 모두 높은 상황에서 DSR은 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스템 건전성 유지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은행과 차주 모두 책임 있는 대출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인하기, 대출금리 인하 체감 어려워지나

가산금리 인하정책은 변수다. 이 대통령은 은행이 대출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법적비용을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하게 전가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가산금리를 내리면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효과가 있어 대출이자 부담을 더는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어 왔다. 이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 제5차 본회의에서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대선 후 빠르게 국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관련기사 : 대선 이후…가산금리 손질 '은행법 개정안' 급물살 탈까(6월2일)

금융소비자 이자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이지만 자칫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면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대출금리 인하 또한 각 은행들이 총량을 제한하면서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대출금리 인하를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법 개정에 따른 가산금리 인하 폭은 0.1~0.3%포인트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은행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여신 규모를 줄이거나 우량 차주 중심으로 대출을 운용할 가능성도 있어 일부 소비자 입장에선 대출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서민 숨통을 트이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채무조정·탕감에 먼저 나설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은 코로나19 당시 대규모로 집행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정책 대출과 관련해 채무조정부터 탕감까지 특단의 대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12·3 비상계엄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도 지원을 약속했다. 저금리 대환대출과 이차보전 사업을 넓혀 소상공인 이자 부담을 덜고 금융사 부실채권을 사들여 처리하는 배드뱅크 설치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