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업계에서는 "5년 뒤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생존 자체가 걱정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카드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부터 돌아보자. 

전문가들은 20년 전 정부가 납세 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내놓은 카드 활성화 정책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1999년 신용카드 등 이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이듬해 신용카드 영수증복권 제도가 고안되면서 카드가 빠르게 보급됐고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1998년 64조원 규모였던 연간 카드이용 금액은 2018년말 768조원으로 20년 만에 12배가량 성장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3분기말 기준 경제인구 1명이 갖고 있는 신용카드는 평균 3.8개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현금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다.

카드결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사업자(가맹점)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카드결제 네트워크 안에 편입해야 했다. 현금결제를 고집하다간 자칫 고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 가맹점이 되면 카드사에 특정 매출에 연동된 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런데 이 수수료가 과도해 카드사만 성장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결제 시장에는 카드사와 가맹점을 전산망으로 이어주는 밴(Van)사를 비롯해 통신기술 업체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하나의 산업군을 이루고 있는 이들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 규모는 카드사 성장에 따라 확대됐는데 카드사에 비해선 미진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여전업계 CEO 간담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런 논란에 주목했고 우대수수료 범위 확대 등 카드가맹점 수수료 낮추기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비록 개별 수혜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을 마다할 가맹점은 없다"며 해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벌어들이는 수익 자체가 작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업이 애초에 정부 정책을 기반으로 성장한 데다 정부 규제가 강하게 작용하다보니 정부와 금융당국에 대놓고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마케팅을 확대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 또한 금융당국이 각종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카드사들은 우회로를 택했다. 이미 적자구조로 들어선 수수료사업을 위해 정부 정책에 맞서는 것보다 대출 등 다른 사업을 통해 손실폭을 메웠다. 수료 수익 감소 폭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규제에 가로막혔다. 카드사의 대출 등 총자산은 자기자본의 6배를 넘지 못하도록 한 레버리지 배율 규제가 대표적이다. 많은 카드사들이 이 규제 한도를 거의 채워가고 있다. 자본 자체를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금융위원장 CEO 간담회에서 한 카드사 대표이사는 "카드사에 적용되는 레버리지 배율 6배를 늘려달라고 3년째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상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계부채를 억제해야 하는 금융당국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각종 간편결제서비스가 몸집을 키우고 있다. 카드사로서는 마음이 급하다. 지자체까지 나서 제로페이나 지역화폐 같은 결제수단을 내놓고 있다. 서비스 효과에 대한 소비자 외면으로 크게 확산되지는 않고 있지만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지역 경기를 살리기 위한 시도라는 명분은 있다.

"불과 5년 뒤 카드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카드사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을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카드론 등 대출 확대는 기존 사업의 연장선일 뿐이다. 카드사들은 할부금융업 진출, 빅데이터 활용 사업 등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갖가지 규제와 시행착오 등으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정부 정책이나 새로운 결제서비스 시장 추세를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카드론 같은 기존 대출사업만으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카드사들의 새로운 먹거리 찾기는 생존과 직결된 필수 작업이다. 정부나 금융당국 또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규제를 풀어 스스로 새길을 찾아갈 기회라도 줘야 한다.